2015-06-23 화요일

지난 금요일부터 월요일까지 실뭉태기처럼 얽혀있는 하루들을 보냈다. 하루 하루를 성심으로, 음미하며 보내지 못한 것이 스스로에게 조금 부끄럽다. 

금요일 밤에 영화를 봤다. 한여름의 판타지아라는 아름다운 영화였고, 흑백으로 찍힌 장면들에서 빛이 구현되는 방식이 좋았다. 챕터원에 나오는 그 감독이라는 인물이 너무나 한국적 아저씨여서 풋풋 웃음이 나왔다. 챕터투에 그늘 없는 남자와 단단한 것처럼 보이는 여자가 나왔다. 장건재 감독의 세 번째 영화다. 첫번째 작품인 <회오리 바람>은 다운 받아 봤었고, 두 번째 영화인<잠 못드는 밤>은 신사역 인디플러스에서 봤었다. 이렇게 나열해놓고 보니 같은 감독의 세 편의 각각 다른 영화에서 등장하는 인물들의, 자신을 드러내고, 갈등을 지나, 서로를 이해하게 되는, 혹은 최소한 ‘알게되는’ 과정이 성장했음을 느낀다. 

위 내용은 사실 별 의미 없는 감상일뿐이고, 내게 남은 것은 1.불꽃놀이는 여름에 2.유성펜을 휴대할 것을 다짐케 하는 영화였다.

 금요일 자정이 다 된 시간에 친구를 만나러 홍대에 갔다. 친구의 단골 술집에 가서 칵테일을 세 잔 마셨고, 40권 가까이 되는 신청곡 노트를 구경했고, 할배락커들이 끝내주는 공연을 하는 라이브 영상을 몇 개 봤고, 리즈대부 홍보지 뒷면에 적어준 starsailor 노래 두 곡을 받아왔고, 튀김과 맥주를 먹고 헤어졌다. 토요일 해 뜰 무렵 잠들었다.

 토요일 점심에 일어났는데 속이 불편했다. 비가 왔고, 아무 것도 먹지 않은 채로 커피를 마시러 나갔다. 오랜만에 누군가와 밝은 조명 밑에 앉아 이야기를 나눴다. 눈을 맞추고 내 얘기들을 천천히 들어줘서 나도 천천히 생각하며 말 할 수 있었다. 카페에서 나와 빗길을 뚫고 중대로 가서 스터디 친구들을 만났다. 이게 엉터리 생고기가 맞는가 할 정도로 붐비는 그 엉터리 생고기에서 고기를 먹고, 자몽에이슬과 소맥을 말아먹고, 흑석동 구석을 뱅뱅 돌며 이차 삼차 사차까지 마친 후, 노래방에 갔다. 내 얘기는 조금 하고 다른 친구들의 말을 많이 들었다. 정말로 마음이 아픈 이야기도, 그저 안타까운 이야기도, 바보같아 보이는 이야기도 있었다. 즐겁고 좋은 만남이어서, 우리 모두 함께 잘 되길 빌었다.

 또 다시 새벽 네시쯤 잠들어, 다음 날 매드맥스를 두 번째로 관람했다. 햇볕이 정말 따가운 날이었다. 집에 돌아와 뻗어서 늘어져 잠을 잤다.

월요일, 또 다시 늘어져있다, 자전거를 고쳤다. 전체적으로 상태 점검을 하고, 새 후미등과 자물쇠를 산 다음 도서관에 가는길에 뻥 소리가 나며 뒷바퀴가 터졌다. 다행히 자전거 가게가 그렇게 멀지 않았고, 20인치짜리 타이어 재고가 있어서 금방 갈아끼고 나는 다시 달릴 수 있었다. 페달을 밟으면 나의 몸을 실은 쇳덩이가 앞으로 나아가는 일이 새삼스럽게 느껴졌다. 바람이 좋았다. 

 놀이터에서 일기를 쓰고, 따뜻한 국수를 먹고, 서은이 만나서 커피와 케익을 먹고, 문구 보따리 쇼핑을 하고, 안녕 다음에 또 만나자 날 보러 와줘서 고마워. 인사를 하고, 퇴첵 때 오랜만에 기윤씨를 봐서 잠깐 잡담을 하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처음 보는 골목으로, 자전거를 몰아봤지만 그 길에 끝에는 내가 아는 정육점이 있었다. 미지의 세계로 통하지 못했음에 안도와 실망을 동시에 느끼며 집에 돌아와 씻고, 불을 다 끄고 거실에 누워 여름 밤 바람을 맞았다. 잠들기 전, 사람들의 얼굴을 하나씩 떠올리다, 한 사람의 안녕과, 다른 한 사람의 절망을 소망하며 잠들었다. 

 오늘이 되어 다시 생각하니, 누구에게 절망이 오길 바라는 일은 상당히 악의적인데다, 그 사람은 사실 매우 다정하고 재미있는 사람이었어서, 결국엔 내가 절망을 느꼈다.

나보다 타인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이 더 많은 하루들이 반복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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