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7-08 수요일

어제는 병원에 다녀왔다. 흐린 날이었다. 강남역에는 항상 사람이 많다. 자라에서 옷을 구경했다. 상아색 바탕에 민들레가 수놓아진 원피스를 사려다 말았다. 거울에 비친 모습은 예뻤는데, 사진으로 찍어 놓으니 자루를 뒤집어 쓴 사람처럼 보여서 그냥 내려놨다.  내 사이즈 옷들은 몽땅 빠지고 없었다. 폴리에스테르 투성이 옷 무더기 사이를 지나며 이것저것 만져보고 몇 가지를 집어 입어보는 일만으로도 기분이 풀렸다. 키가 5센치만 더 컸으면 더 근사해보였을텐데 하는 생각도 잠깐 했다.

도서관에 들어가기 싫어서 커피를 마셨다. 키가 큰 의자에 앉고 싶었지만 그냥 구석에서 쭈그려 앉았다. 선생님은 굳이 도박에 중독됐던 사람이 도박장 옆으로 이사를 갈 필요는 없다고, 말씀하셨지만, 나는 도박장 옆으로 이사 갔다. 윌리엄 버로스는 <정키>에서 아무도 자신이 중독자가 될 것이라 생각하지 않고, 중독자가 된 이후에도 자신을 중독자라 생각하지 않는다 말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나는 내가 중독자임을 알고 있다. 어쩌면 안다고 생각하는 일도 오만을 부리는 것일지 모른다. 정말로 알고 있다면, 몸을 움직여야 하는데 나는 계속 고인 물 위에 서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17800원어치 약이 생겼고, 넘어져서 입에 흙이 들어가도 퉤퉤 뱉고, 다시 털고 일어나 가야 한다는 말을 일기장에 적어놨으므로, 괜찮다. 어제도 오늘도 또 괜찮다. 너저분하게 망가지더라도, 일어서서 걷는 일은 중요하다.

신논현역 사거리의 8차선 도로 횡단보도를 빙빙 돌며 김홍희 <방랑> 을 들었다. 오늘 아침 도서관에 와서 서두의 김영하 작가가 하는 말을 연필로 한 페이지 받아 적었다.

“얼마 전에 유명한 친일파, 매국노죠, 이완용에 대한 평전이 출간됐다는 소식을 듣고, 저는 읽어 보지는 않았습니다만 ‘매우 의미 있는 일이다.’ 라고 생각했어요. 왜냐하면 그 역사적 격변기에 왜 그런 판단을 내렸는가, 그 사람은 도대체 어떻게 살아왔길래 그런 결정을 내리고 또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의 이런 판단을 강제했는가? 그리고 그 사람은 어떻게 죽었는가? 그리고 그 당시 사람들은 그를 어떻게 받아들였는가? 이런 것은 소설가인 저에게는 매우 중요하고요. 딱히 소설가가 아니더라도,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야 될 것인가, 인생이라는 것은 많은 결정들로 이루어져 있잖아요. 그리고 앞으로 역사가 평탄하리라고만은 예상할 수 없는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를 생각하기 위해서 실제로 살았던 사람이 내린 결정들을 보는 것을 저는 대단히 좋아합니다.

김홍희씨의 이 산문집은요, <방랑> 이것은, 거기에는 상당히 많은 자기 이야기가 있습니다. 예술가들은 아무래도 자기에 집중하게되는 그런 존재들이라서 그런지, 예술가들이 쓴 산문집에는 자기가 어떻게 예술가가 되었는가, 또 그것을 어떻게 어려움을 뚫고 견지해 갔는가, 이런 얘기들이 많이 등장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 김홍희씨 산문집의 좀 특이한 점은, 자기 주변의 인물들을 냉정하게 관찰하고 그것을 옮겨놓은 부분이 상당히 탁월합니다. 저는 그 부분을 역시 더 좋아하는데요. 이것은 앞으로 혹시 자기 인생을 기록하고자 하는 분들이라면 참고할 만한 것이라고 저는 생각해요. 저같은 독자들도 있으니까요. 뭐냐하면, 자기 자신에 대해서 서술하는 것보다는 그 주변 인물들에 대해서 냉정한 시선으로 그리고 세밀하게 서술함으로써, 역으로 자기를 드러내는 것은 매우 중요한 글쓰기의 어떤 전략일 수 있어요. 그리고 또 그것이 어떻게 보자면 정직하게 한 인간의 삶을 기록하는 방식이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어요.

우리는 혼자 존재하는게 아니잖아요. 어려서부터 형제, 자매, 부모, 여러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살아가고, 그들을 통해서 또는 그들의 모습에 반영된 자신의 모습을 통해서 한 인간의 캐릭터, 인격이 구축되는 것이니까요. 그렇습니다. 그리고 또 자기 자신에 대해서 쓸 때는 아무래도 여러가지 나르시시즘에 빠지기가 쉽고요. 그래서 사실은 ‘남의 얘기를 오래 들어주는 것’, ‘남이 자기 얘기를 하는 것을 오래 들어주는 것’은 어, 네, 돈 받고 해야되는 일이죠. 그건 그냥 돈을 주고 하기에는 좀 아까운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팟캐스트에서 그의 입을 통해 나온 문장들을 그대로 받아 적었다. 활자로 옮겨놓으니 역시 매끄럽지 않은 글이 되버렸지만, 그래도 여전히 기록할 만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지난 오월의 끝무렵에, 학교 축제에 다녀왔다. 학교 축제는 처음 가보는 고학번인 나는, 아무도 기대하지 않는 심야 영화제를 기대했다. <추격자>를 보고 싶었고, 동기 친구들은 술을 마시고 싶어했다. 순하리가 출시된지 얼마 안된 무렵이었다. 형주씨는 나를 만나러 와주었다. 그는 김훈의 <화장>을 읽다가 온수역까지 가버렸는데 다시 칠호선을 타고 상봉까지 왔다. 미안한 마음에 그냥 다음에 보는게 어떻냐고 했는데, 목적지까지  이동하는 여정 자체를 좋아한다 말해줘서 고마웠다.

괴상한 저녁 식사를 한 나는, 회기역에서 공차를 사들고, 그를 기다렸다. 내가 세상에서 가장 서글픈 마을버스라 생각하는 그 버스를 타고 학교 정문에 내렸다. 축제는 시시했고, 그 이상한 열기와 북적임이 싫었다. 다들 들떠보이지만 동시에 가라앉아 보였다.  빨리 영화를 보고싶었다. 그 날은 점심부터 학교에 가서 호천이, 지수, 기엽이, 하은이, 준호, 용희, 지은, 민희를 만났다. 국사봉 산에 밤 산책을 하러 가며, 내가 점심 때 어떤 닭도리탕을 먹었는지, 내가 누구를 왜 좋아하고 왜 불편해 하는지, 나의 친구들은 어떤 일을 겪었는지, 내가 아는 짧은 정보들을 재구성해 열심히 말했다. 그는 나와 마지막으로 만날 날에 “어쩐지 해민씨는 자기에 대해 얘기하는 것을 피하는 듯한 인상을 받았어요. 그런 일이 있었군요.” 라고 말했다. 그 날은 산에서 돗자리를 펴놓고, 두 번째로 만난 떠돌이 개 세 마리가 지나쳐 가는 것을 봤다. 그는 개들이 그렇게 지나간 것이 가장 기억에 남고 이상했던 경험이라 말했다. 나는 개들에게 별 관심이 가질 않았다. 그저 “쟤네들은 다 연기하는 거에요. 여기가 무대고요. 한 마리씩 지나가며 연기하는 거에요.” 라고 농을 쳤다.

산에서 불량배를 만난 쫄보 상황극을 하며 산길을 뛰던 나는 돌부리에 걸려 넘어졌고, 그런 나를 비웃다 그도 동시에 넘어졌다.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너무너무 아파서 일어날 수 없었다. 나는 무릎이 깨졌고, 그는 턱이 깨졌다. 화장실에 다녀와서, 다시 한 번 산책로 한 복판에 드러눕고 싶어서, 같이 누워달라 요청했다. 시골 할머니 집에 놀러온 연기 했다. 옥수수 주세요 할머니. 별이 참 많아요. 당신은 새가슴이군요. 새가슴이 뭐에요? 저는 새가슴이 정말로 뭔지 모르겠어요. 설명을 들어도 모르겠어요. 손을 배에 올리고 나는 숨을 들이켰다 뱉었다.  무릎에 멍이 생겼고, 열흘 넘게 파랬다. 한 걸음 내딛을 때마다 삐걱 거리는 불쾌한 느낌도 들었다. 곧 오월이 끝났다. 매드맥스를 처음 봤던 토요일에, 새벽에 여의도에서 이태원으로 갔다. 바보처럼 사물함에 짐을 놓고 왔다는 그를 만나, 그 날의 일들을 들었다. 그것이 알고싶다의 검은 미니스커트 여인과, 홍천강의 빨간 하이힐 이야기를 들려줬다. 문이 계속 닫겨있는 떡볶이집 이야기도 했다. 삼각지역에서 바라지 않던 해가 떠버렸고 할 수 없이 우리는 출근하는 직장인 연기를 했다. 전혀 한심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날이 밝았는데도 슬프지 않았다.

일들이 벌어졌고, 즐거웠고, 많이 웃었고, 기대를 하고, 마음이 먼저 달려갔다. 어쩌면 돈을 받지 않고 얘기를 들어주느라, 찬 손을 잡아주며 쉼 없이 쏟아지는 말들을 듣느라 시간을 많이 낭비했다 느꼈을 지도 모른다. 그저 내 말들에 집중하고, 내가 그 상황에서, 어떤 기분이었을지 상상했다는 말이, 이제 겨우 고맙다. 내 손을 떠난 일들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치졸한 악담을 퍼부었고, 속으로 부글 부글 끓으며 깎아내렸고, 이렇게 이야기를 팔아버리고 만다. 여전히 눈을 감고 비틀거리며 걷는 내가, 중심을 잡아보려 어쩔 수 없이 팔았다고 변명하고 싶다. 아무도 사지 않을 이야기여서 다행이지.

7월 8일 수요일이다. 2015년이 184-7=177일 남았다. 아직 여름은 80일도 넘게 남았는데 손등이 벌써 까맣게 타서 손가락 측면에 흑백 경계선이 생겼다. 최고로 많은 단어들을 썼다. 사설이 긴 나는 압축하는 연습이 필요하지만, 노력할 마음이 없다. 아마 평생 사설이 긴 사람으로 살지 않을까. 일기장과 트위터 그리고 워드프레스가 있는 오늘을 살아서 다행이야. 아침에 또 지각을 했고, 2000원 벌금이 또 달렸다. 미안해서 맥모닝을 샀다. 민욱씨는 계절학기 중간고사가 열시에 있어서 밤을 샜고, 영혼이 다 털린 듯 보였다. 벼락치기로 버텨온 삶에 대해 하소연하다, 서른 즈음에도 무직이라면 그 때는 벼락치기 인생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을거라 말했다. 기윤씨는 겨울까지 계속 같이 공부하면 좋겠다고 말해줬다. 나는 속으로 히히 웃었다. 우리는 아침 7시에 만나기로 했다. 가지치기를 잘 하고, 걸어가야지. 멈추거나 뛰지 않고 일정한 속도로 걷는 일은 어렵다. 어려운 일에는 훈련이 필요하다. 이렇게 긴 다짐을 했으니 잘하자. 2015 잘하자 7월 잘하자.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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