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7-29 수요일. 나는 이제 움직여진다.

나는 이제 움직여진다.

지지난주에 사촌들과 바른 손톱이 다 벗겨졌다. 집에 가면 지워야지 지워야지 하면서 방치시킨지 수 일 째다.

하지만 나는 이제 움직여진다. 손톱은 중요하지 않다. 지난 일요일 스터디에 장인정신은 다 버렸지만, 어쨌든 문제수를 맞춰서 풀어갔다. 부끄러움은 스스로에게 느꼈다. 다음주에는 미리미리 해서 장인 정신도 장착한 숙제를 해 가야지. 그런데 내 몫의 문제를 복사하지 못해서 사람들에게 폐를 끼쳤고, 아이스크림을 샀다. 장염 걸린 작은 동준이에게는 “너는 장염이 다 나으면 먹으렴” 하고 밀크캬라멜을 사다줬다. 친절한 사람이어서 좋았다.

우리는 맥주를 마시러 갔다. 낮에 짬뽕과 군만두와 탕수육 대짜를 먹었다. 다성반점 쿠폰이 15개 생긴만큼 배가 불렀다. 나는 치킨은 안 먹고, 맥주만 마셨다. 중대생들이 입을 모아 “딥테가자 딥테” 를 외쳐 우리는 이끌려갔다.

DEEP TASTE였다. 치킨집 이름으로 쓰기에는 조금 힙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막상 도착하니 1도 힙하지 않아서 좋았다. 에어컨에 4년은 묵은 이효리 소주 광고 포스터가 붙어 있을 법한 집이었다. 의자는 광택나는 기이한 붉은색 꽃무늬 커버가 씌여져있었고, 먼지가 심하게 떡져있는 선풍기가 돌아가고 있었다. 이왕 돈을 주고 가는 장소라면 쾌적한 곳이 좋지만, 그 날은 딥테같은 곳에 가야하는 날이었다.

치킨은 한 마리인데 맥주와 소주 값으로 인당 만원씩 냈다. 이차로 그저 그런 지하에 술집에 갔다. 나는 자꾸 “문선”이를 “정선”이라고 불렀고, 다음 날 카카오톡으로 미안하다며 사과했다. “두환”이도 “두한”이라고 불렀다. 좀 취해서 정신 나간 소리들을 했지만, 그래도 유쾌했다. 절망적인 말들을 1도 하지 않았다. 하고싶은 마음도 들지 않았고, 즐거웠고, 페미니즘 이슈에 대해 잠깐 논쟁도 했고, 합격하면 실현시키고 싶은 각자의 소시민적 삶에 대한 환상을 하나씩 풀었다. 두환이는 1일1치킨을 말했다. 조장님은 사실 자기는 클래식 음악을 너무너무 좋아해서, 걱정 없이 보고싶은 공연을 보는 삶을 살고 싶다 말했다. 나는 언제나처럼, 노후자금이 있고, 전세집이 있으며, 오후 2시에 퇴근하는 삶. 노후자금은 10억이어야 한다고 떠들었다. 이 사람들은 귀엽게 솔직하고, 선을 넘으려는 사람과, 선을 잘 지키는 사람, 혹은 바깥으로 한걸음도 나오지 않는 사람들이 섞여있어서 우리는 얼굴을 붉히지 않고 즐겁게 웃을 수 있다.

평소에는 흐트러짐 없이 잘 포장된 모습을 보이다가, 그럴만한 상황에서 조금씩 자기에 대해 스스럼 없이 이야기 하는 사람이 제일 좋다. 그건 조장님.

나도 그런 사람이 되고싶어. 인상 깊은 밤이었다. 짱돌에 맞아 죽거나 차에 치이지 않고 무사히 집에 돌아와, 씻고, 처음으로 엄마에게 “어휴 술냄새” 하는 쿠사리를 들었고, 깨끗이 씻고, 막내에게 내가 너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주절주절 아저씨처럼 떠들다 잠들었다.

6시 10분에 일어나서, 도서관에 7시에 도착했다. 어제도 오늘도 6시 20분에 일어나서 7시 10분에 도서관에 도착했다. 바퀴가 돌아가기 시작해서 기쁘다. 컴퓨터실에 와서 자판이 탁탁 쳐지는 경험을 하고 싶어서 잠깐 내려왔다. 올라가야지. 그리고 다시 또 움직여야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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