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7-30 목요일

지난 밤에 빌 브라이슨 책을 읽다 잤다. 출판사 까치에서 나오는 거의 모든~ 시리즈는 뒤로 갈수록 표지가 구려진다. <거의 모든 것의 역사> 껍데기가 제일 예쁘고, <거의 모든 사생활의 역사> 껍데기는 조금 후지고, <발칙한 영어산책: 엉뚱하고 발랄한 미국의 거의 모든 역사> 은 제목부터 껍데기까지 심하게 심하게 후지다. 손이 안 가서 머리맡에 두고 몇 페이지 뒤적거리다 말았는데, 어제 밤에 잠이 오지 않아 각잡고 읽어보니 역시 존잼.

메이플라워호에 탔던 사람들에 대한 기록:

“그들만큼 황무지 생활에 어울리지 않는 사람들도 없었다. 이들은 여행의 목적을 잊은 사람들처럼 해시계, 촛불 끄는 도구, 북, 나팔, 두꺼운 터키 역사서 등을 챙겨 넣었다. 윌리엄 뮬린스라는 사람은 양말 126켤레, 긴 장화 13켤레를 가방에 넣었다. 하지만 소나 말, 쟁기나 낚싯줄을 챙길 생각은 아무도 하지 않았다. 메이플라워호에 탄 사람들은 재단사 두 명, 인쇄공 한 명, 상인 몇 명, 비단 직공, 소매상인, 모자 가게 주인 등으로 척박한 환경에서 살아남아야 할 때 꼭 필요한 재주를 가진 사람은 없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한 밤에 컹컹 거리면서 웃었다.

컴퓨터실에 온 김에 좋아하는 시 몇 편을 남긴다.

며칠째 트위터 타임라인을 달구는 화제는 한국 근대 문학 기저에 깔려있는 여성혐오 정서에 대한 비판들이다.

나는 박태원, 김소진, 박완서, 백석 그리고 몇몇 현대시 시인들을 좋아한다.

구보씨의 일상은 너무나 애잔하고 시궁창이어서 좋아하고, 김소진은 <장석조네 사람들> 한 편 으로 좋아한다.

박완서쌤은 그냥 나의 쌤이고, 백석은 백석 덕후가 쓴 백석 평전을 읽고 더 좋아졌다.

좋아하는 시 몇 편을 올린다.

<내가 이렇게 외면하고>
백석

내가 이렇게 외면하고 거리를 걸어가는 것은 잠풍 날씨가 너무나 좋은 탓이고
가난한 동무가 새 구두를 신고 지나간 탓이고 언제나 꼭같은 넥타이를 매고 고운 사람을 사랑하는 탓이다

내가 이렇게 외면하고 거리를 걸어가는 것은 또 내 많지 않은 월급이 얼마나 고마운 탓이고
이렇게 젊은 나이로 코밑수염도 길러보는 탓이고 그리고 어늬 가난한 집 부엌으로 달재 생선을 진장에 곳곳이 지진 것은 맛도 있다는 말이 자꼬 들려오는 탓이다

<강>

황인숙

당신이 얼마나 외로운지,

얼마나 괴로운지,

미쳐버리고 싶은지 미쳐지지 않는지

나한테 토로하지 말라.

심장의 벌레에 대해 옷장의 나방에 대해

찬장의 거미줄에 대해 터지는 복장에 대해

나한테 침도 피도 튀기지 말라

인생의 어깃장에 대해 저미는 애간장에 대해

빠개질 것 같은 머리에 대해 치사함에 대해

웃겼고, 웃기고, 웃길 몰골에 대해

차라리 강에 가서 말하라.

당신이 직접

강에 가서 말하란 말이다.

강가에서는 우리

눈도 마주치지 말자.

마지막으로, <리츄얼>에 실렸던 플로베르의 글. 존잘의 고뇌.

“피곤에 지친 내 몸뚱이에서 팔이 떨어져 나가지 않는 이유, 내 뇌가 녹아 없어지지 않는 이유가 때로는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다. 나는 모든 외적인 즐거움을 멀리한 채 금욕적인 삶을 살며, 일종의 끝없는 발작만이 나를 지탱해주는 듯 하다. 그 발작에 때때로 나는 무력하게 눈물 짓지만 발작은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는다. 고행자가 자신의 뱃가죽에 생채기를 내는 헤어셔츠를 사랑하듯이, 나도 광적이고 변태적인 사랑으로 내 일을 사랑한다. 헛헛한 마음이 밀려올 때, 적절한 단어가 떠오르지 않을 때, 몇 페이지를 끄적거렸지만 정작 한 문장도 쓰지 못했다는 걸 깨달을 때, 나는 소파에 풀썩 주저앉고 멍하니 누워서 절망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린다. 나 자신이 한없이 원망스러워서, 그런 망상을 열망하게 만든 덧없는 교만을 부린 나 자신을 탓한다. 하지만 15분쯤 지나면 모든 것이 달라진다. 내 가슴은 한없는 환희에 두근거린다.”

아름다운 것들을 보고 나니 눈이 맑아지는 기분.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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