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잠한 사람

2020년에 써두고 임시글로 넣어둔 글을 오늘 발행했다. 그새 4년이 흘렀다. 코로나 시대의 일들은 흐릿하게만 기억된다. 가끔 구글 포토에서 여행다녀온 사진들로만 기억되는 나날들. 작년에도 수면제 계열 영화를 한 편 더 봤는데, 그 영화는 좋았다. <이니셰린의 밴시>라는 그 영화는 사실 수면제 계열로 분류하기엔 꽤 자극적이다. 손가락을 잘랐고, **가 잘린 손가락을 집어먹고 죽는 장면이 있으니까. 아무튼 2024년 2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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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수면제 영화라 부르게 된 것들

2014년은 모질고 힘든 해였다. 이젠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매일 수치심과 고통에 시달렸고, 하루에도 몇 번이고 눈물을 쏟아냈던, 잠시 놀이터에 앉아 혼자 맥주를 마시던 날이 가장 뿌듯하고 행복한 하루로 기억되던 그런 해였다. 그때 좋아하던 영화관은 이대 후문의 필름포럼. 12년도엔 그곳에서 <아무르>를 두 번 관람했다. 그땐 그 영화가 왜 그렇게 좋았던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좌석이 30석쯤 되는, 영화관이라 부르기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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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 첫 금융소득

한국에서 나고 자란 장녀답게 나는 늘 돈에 쫓기듯 살았다. 우리집 가계 경제가 무너지고 있다는 이상한 망상을 주입당해와서라고 주장하고 싶지만 이제 누구 탓을 하기엔 왠지 입이 떨어지지 않는 나이가 되었으니, 그냥 그렇게 살아 왔다고만 하겠다. 내가 기억하는 최초의 금융 거래는 5세 어린이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슈퍼에서 “202동 103호요. 나중에 우리 엄마한테 받으세요.”라는 말과 함께 100원짜리 동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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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4-20 토요일

소풍을 다녀왔다. 어김없이 매해 4월이 되면 아무도 찾지 않는 이 공간에 와서 지난 글들을 훑어보고 감상에 빠진다. 지난 해 4월 이후 돈을 많이 벌었다. 통장 잔고가 늘어날수록 욕심이 커진다는 문제가 있지만, 그럼에도 인생에서 최초로 그럴듯한 ‘연봉’을 손에 쥐어봤다. 요즘 인생의 화두는 부동산과 재테크인데, 여성의 삶에는 튼튼한 울타리가 되어줄 여러 가지 자신이 필요하다는 취지이다. 시간을 많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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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1-13 화요일

자정이 30분 지났다. 이 시간대에 지하철을 타본 게 얼마만인지. 기계식 키보드가 없어서인지 2015년부터 3년이 흐른 탓인지 책을 덜 읽게 되어서인지 튼튼한 사람이 되어서인지 모르겠지만 별로 쓸 말이 없고 어떻게 써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꼭 남겨야할 것 같은 순간이라 나는 쓴다. 상도동까지 가는 7호선 막차를 타고 있다. 나는 이제 남자 때문에 울거나 속상해 할 일이 없는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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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9-29 토요일

이렇게 기분 좋은 날이 또 언제 올까 하여 일기를 쓴다. 어제가 둘째 동생 생일이어서 오늘 식구들과 이태원에서 밥을 먹었다. 나도, 둘째도, 막내도 나이가 들어 서로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안정적인 균형감을 잃지 않는 것이 새삼 낯설고도 기쁘게 느껴졌다. 마침 토요일이라 유행사 천막에서 개와 고양이를 잠시 바라볼 수 있었다. 하늘색 하네스를 매고 꼬질한 옅은 갈색 반점이 미간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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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4-03 화요일

요즘 행복해서 워드프레스에 기웃거릴 일이 없었다. 그런데 봄이 오니까 다시 마음이 가라 앉으려 해서 눈 앞이 흐려지는 날. 좋은 해가 아니었음에도 자꾸 돌아가고 싶은 2015년이 이곳에 담겨있다. 지난 주말에는 영화를 봤다. “Almost none of us commit suicide, whereas almost all of us self-destruct. We drink, or take drugs, or destabilize the happy job – o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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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1-13 금요일 :SNEF2017

<서울북동부페미니스트 소모임: SNEF2017> 첫 모임 날이다. 눈이 내렸다. 서울에서 눈이 와봤자 요만큼 내리는  정도지만 그래도 마음이 들떴다. 삼천원이면 커피를 한 잔 마시며 앉아 대화할 공간이 있어서, ‘대화’를 할 수 있는 상대와 마주 보고 앉을 수 있어서, 내가 페미니스트여서, 우리가 페미니스트여서 기쁜 하루이다. 펜을 잡고 공책에 한 줄씩 무엇을 적어내리는 일보다 엄지 손가락을 움직여 한 칸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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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2-29 목요일

2017년이 코앞이다. 나는 그저 발을 동동 구르며 쇼핑만한다. <이런 옷을 샀다. 저무는 한 해를 붙잡아 보고 싶은 마음은 1도 없다. 벌써 혼자 새해를 맞이한 듯 싶다. 건강히 잘 지내자. 클라이밍 암장 다닌다. 은행 간판마저 중국어로 쓰여진 동네에 위치한 암장이다. 손바닥에 빨리 굳은살이 생겼으면. 오늘 아침엔 여덟시도 되기 전에 눈이 떠져서 계절학기 수업에 제 시간에 도착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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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8-09 화요일

나는 아이들을 가르쳤다. 혜란이가 준 오곡 쿠키를 시원이에게 주면서 죄책감을 느낀다.  시원이는 무척 애교가 많고 자꾸 배를 보여주려 하는데 농구공 이라고 퉁퉁 치면 웃는다. 새 옷장이 왔고, 택배 기사님께 현관 비밀번호를 가르쳐주는 것을 들은 택시 기사님이 세상 무섭다고 경고해서 집에 돌아오자 마자 비밀번호를 바꿨다. 명란젓에 밥 먹고 고내기를 한참 만지다 잠 들었다. 기윤쓰한테 전화가 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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